
한 권으로 끝내는 드로잉
저자: 수니오기 안드라시
역자: 안영진
원제: The Big Book of Drawing
발행: 2017년5월15일
면수: 408쪽
판형: 215x280*21mm
정가: 22,000원
ISBN: 979-11-6058-008-2 (03600)
아이고 이게 얼마만입니까… 2017년에 나온 책의 소개글을 3년 뒤 2쇄가 나온 지금에야 쓰러 복귀한 노염치 오스테입니다!!!
이번 책은 헝가리의 그림 본좌 수니오기 언드라시 님의 작품입니다… 예? 왜 이름을 다르게 부르냐고요? 네… '언'드라시가 맞습니다! 표기가 András Szunyoghy였는데 헝가리 이름이 낯설어서 엄청 검색하고 유튜브에서 인터뷰 영상도 봐가며 열심히 옮겼는데 틀렸네요; 언드라시가 헝가리에서는 철이영이급으로 흔한 이름이라 검색해 보면 동명이인 많이 나오는데 왜 이걸 틀렸는지 모르곘어요ㅠㅠ 딴건 몰라도 저자 이름은 이제 와서 바로잡을 수가 없는 거라 2쇄도 그대로 갑니다 죄송합니다 저자님 독자님들 헝가리 형제들!! 사실 원래 성도 '수뇨기'에 가까운데 그러면 그… 쉬야 받는 그 뭐시기랑 겹쳐서 영 거시기한지라 네 글자로 늘렸다지요
자, 아무튼 안… 언… 에잇 그냥 수니오기 님은 연필과 붓, 잉크 같은 전통적인 도구로 이런 소묘를 그리는 분입니다. 엄~청 꼼꼼히, 무~지하게 많이요. 음 보다시피 뭐 잘 그리시긴 했지만 좀 밋밋하고 심심한 느낌이죠. 그저 기본기에 충실하게, 형태 정확히, 명도 똑같이, 선은 면의 방향에 맞춰서… 흐음~ 완전 모범적이네요.
잉크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의 굵기와 간격에 따라 명도가 나오고, 그걸 면의 방향에 맞춰 일정하게 그어 주고, 더 밝은 부분에는 점선이나 점묘도 적절히 활용하고 하면 표현 못할 입체가 없겠죠. 역시 좀 지루하긴 하지만…
와, 대체 이분은 이런 해칭으로 평생 몇 평방미터나 메꾸셨을까요? 축구장? 여의도? 한반도오? 각도를 바꿔 가며 일정한 간격의 선을 겹칠수록 명도가 진해진다… 이론이야 간단하지만 해보신 분은 알 겁니다. 저렇게 고르게 칠하는 거 진짜 힘들어요… 할 수 있어도 좀이 쑤셔서 못 견딘다고요! 사부님 지겨워요! 좀 재밌는 것 좀 해보자고요!
"허허 수태야 그럼 어디 응용을 좀 해볼까~?"
헉 사부님 잠만요; 갑자기 왜 고수삘 내시는 거에요 못 따라가겠어요!
"허허 쓴 기법은 펜으로 선묘 긋고 점묘 찍는거 똑같은데 뭐가 어렵니 니가 기본기가 존나 딸리는 거지 그럼 이번엔 연필로도 좀 복잡한 거 그려봐~?"
"참 쉽지? 너도 할 수 있겠니?"
죄송합니다 선생님 머가리 오지게 박겠습니다ㅠㅠ
"그럴 건 없고^^ 오늘 저녁 전까지 스케치북 열 장만 김 만들고 가거라~ 목탄 금지야 연필로만~"
자! 대충 감 오시죠? 수니오기 님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근성으로 오랜 세월 쌓아 올린 내공을 갖춘 분입니다. 한 800년 사신 것 같아요. 아니 진짜로, 전 이분 지금 살아 계신 것 알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중세까진 아니더라도 최소 19세기 분인 줄 알았음! 근데 알고 보니 겨우 1947년생… 한참 젊으심;
그래서 이 책 읽다 보면 예에전에 미술학원에서 입시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런 요령 진짜 배우거든요ㅋㅋ 거슬러 올라가면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까지 가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계속 전수된 측정법이죠. 그림 속에서 기준으로 쓸 크기 하나 정해서 그걸로 다 재고 기울기도 재고… 와 진짜 추억 새록새록ㅋㅋ
근데, 요즘 형태 정확히 옮기고 싶으면 그냥 사진 찍으면 되잖아요? 사진 보고 그리기도 힘들면 아예 화폭에 인쇄하거나 프로젝터로 쏴도 그만이고… 디지털로 작업할 때는 더구나 레이어 하나 깔고 투명도 높이면 땡. 이런 수백 년 묵은 기법은 솔까 입시 미술 외엔 쓸 일이 없는 게 사실이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게 워낙 낡은 방식이다 보니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게 많습니다. 이를테면 저 정육면체, 수니오기 님이 위의 연필 측정법으로 일일이 실물 치수 따와서 그린 거거든요? 근데 암만 봐도 뭔가 찌그러져 보여서 투시선 연장해 보니 저래요ㅋㅋ 물음표 붙은 선이 제가 그은 건데 저 네 가닥이 한 점에서 만나야 투시원근법에 맞거든요. 근데 실제로 측정 막대로 재서 그리면 저렇게 나올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측정에 오차가 있고 사람의 망막은 이상적인 투상면이 아니니까요. 먼 옛날 제가 석고정물수채화에 그려 넣던 벽돌도 대충 저렇게 생겼던 것 같아요ㅋㅋ
원근법을 다룬 부분도 있는데, 되게 희한하게 설명 합니다. 대충 시야를 사분면으로 나눈 다음에 정사각형을 가로로 눕히고 세로로 돌려 정육면체의 바닥면을 만드는 식으로… 어차피 제대로 작도할 것도 아니면서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이게 오랜 세월 화실에서 쓰여 온 방법이란 걸 생각하면 무시하기는 어렵죠. 그 실전성만큼은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어찌 보면 기하학적인 계산 없이 투시원근법을 이해하려면 가장 쉬운 방법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한 권으로 끝내는 드로잉』의 가치를 찾고 싶습니다. 여기 실린 이론과 기법은 모두 수백 년 이상 묵은 것들입니다. 요즘은 너무 낡게 느껴지고, 명백히 틀린 내용도 섞여 있죠. 하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그 해묵은 도구에 의지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걸작들을 제작해 온 겁니다. 오늘날의 그림쟁이는 훨씬 풍요로운 환경에서 많은 참고물을 활용하고 다양한 매체를 구사하지만, 그런 만큼 전통적인 도구에 숙련될 시간이 부족하죠. 살아있는 화석(...)이신 수니오기 님은 바로 그 숙련도를 이 책에서 보여주고 계십니다. 죽 읽다 보면 분명 배우는 게 있어요. 와 그 흔한 연필로 수직선만 줄창 그어도 힘 조절을 절묘하게 하면 이런 풍경이 나오는구나… 라던가!
제가 밋밋하고 지루한 기법이란 소릴 계속 했지만 그건 아마 교육용으로 절제된 스타일일 거고, 거친 도구를 써서 휘갈기신 걸 보면 사실 감각도 끝내주십니다. 제가 제일 인상 깊게 본 그림은 이건데요, 저렇게 진짜 별거 없는 풍경을 저만큼 포착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야외 사생 해본 분들은 아실 거예요. 대단하죠?
이분이 진짜 손그림 대마왕인 게, 어지간한 건 다 손그림으로 해결해 버립니다. 이게 잉크워시를 바르는 도구를 설명한 짤인데, 보통 이런 내용이면 도구를 칠한 결과물 위에 실제 도구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게 마련이잖아요? 근데 수니오기 님은 다 그림으로 처리해 버립니다. 그런 데서 오는 조형적 일관성이랄까? 도 상당한 매력입니다.
이런 과정도도 잘 보면 복사한 게 아니고 세 번 다 따로 그렸어요ㅋㅋㅋ 와 진짜 기계랑 안 친하신 듯? 근데 그런 것치고는 주요 선의 위치가 놀랍도록 비슷해서 이해에 지장이 없음. 하 아날로그의 로망이여ㅠㅠ
책 후반부로 가면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도감으로서의 성격도 있습니다. 그냥 사진 보고 그리신 거 같긴 하지만 동식물의 여러 종이 꽤 다양하게 나와요. 외형만 그린 게 아니라 공부도 같이 하셨는지 특징이나 생태에 대한 설명도 꽤 충실함;
그 와중에ㅋㅋ 이렇게 인체를 왜곡시켜 동물의 신체 구조를 이해하는 건 다른 책에서도 자주 나오지만 퀄이ㅋㅋ 전체적으로 그림을 활용한 설명을 되게 잘 하세요. 진짜 교습 경험이 풍부하시다는 생각이 곳곳에서 듭니다.
이번엔 연필로 가로선만 죽죽 그어도 이 정도는 뽑는다!를 뽐내 주시는 구름 그림과 함께 단점을 좀 말씀드리자면…
이 책은 헝가리어->영어->한국어 중역입니다. 사실 명확히 해석되지 않는 구절도 꽤 있었어요. 근데 뭐 그림이랑 같이 보면 하려는 얘기가 뻔해서 제가 넘겨짚은 부분도 많이 틀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뻔뻔질해 봅니다-3-
그리고 읽다 보면 반복되는 내용이 많을 텐데요. 이를테면 원통형의 윗면보다 아랫면 곡률이 크다는 얘기… 한 네다섯 번 나오지 않나? 원서도 그래요ㅠ 저도 막 데자뷰 느끼면서 작업했습니다;; 거 원래 어르신한테 뭐 배우려면 한 소리 또 하고 또 하시는 거 정도는 각오해야 하잖아요? 이 또한 중세인과 소통하는 맛이려니~
알고 보면 은근 재밌는 분일 거 같은 수니오기 님의 자화상을 보면서 마무리해 보자면~
『한 권으로 끝내는 드로잉』은 타임머신 타고 르네상스 시대에서 집어온 듯한 클래식 드로잉 도감입니다. 오늘날의 기준에선 낡아빠진 것 맞아요. 이 책을 가장 혹평하자면, 이럴 거면 그냥 사진 찍어서 뽀샵으로 스케치 필터 먹이지 뭐하러 손아프게 그리고 앉았냐고 할 수도 있겠… 예끼!
그치만 드로잉은 그림쟁이의 손과 눈과 뇌를 단련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컴퓨터를 주로 써서 작업한다 해도 손그림 기술은 여전히 중요해요. 조형성의 본질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니까요. 전문가라도 한번 죽 읽어 보시면 분명 얻어가시는 게 있을 거고, 취미로 그리는 분이라면~ 연습장 하나에 연필 한 자루만으로도 여기 실린 정도의 그림을 지향할 수 있겠죠. 다만 여기 실린 그림을 보고 베끼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실물을 사생하는 게 가장 좋고, 사진을 참고하는 게 그 다음입니다.
여기까지, 오랜만에 생존 신고 마치고 갑니다. 아! 이번 2쇄에서는 문장과 편집상의 크고작은 오류를 여럿 수정했고, 판형을 약간줄여 책을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초판은 엄청 크고 무거웠다는; 지금 서점에 다 풀렸을 거에요! 잘 부탁드립니닷!
태그 : 번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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